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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7.png 9세 현풍공 세거지-요당 마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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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민의 구성과 변천

가. 入鄕 當時

1) 입향시기 : 1623년 중종으로부터 流配에서 伸冕 復職의 명을 받은 그 해를 입향시기로 추정한다.

2) 入鄕前 先住民의 유무 : 선주민이 있었다는 기록이나 구전이 없다. 선주민이 남겼을만한 생활흔적(집터, 분묘, 매몰유품)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재 요당리 은행나무 마을은 류씨가 처음 개척한 지역이라 추정하고 있다.

3) 입향인 : 류영하(류영하, 71세), 부인 박씨(72세), 아들 류흘(류흘, 45세), 손자 류정빈(류정빈, 17세)

친족 및 친척이 함께 입주한 기록이나 구전이 없다. 婢僕은 거느리고 입주했을 것을 추정된다. 流配時에 奴婢가 따라 갔을 수도 있고 혹시 관청에 몰수당했어도 유배형에서 신면되었을 때 다시 회수하였을 것이다.

 

2. 1945년 해방 당시 주민 총 호수 40호

내역 : 兩班 30호(류영하 차남 류흘의 후손 27호, 他姓氏(류씨의 외손 또는 인척) 3호)

下人 및 하인 후손(종전부터 류씨 門中에 속했던 사람) 5호

常民(류씨문중의 하인과 혼인한 남자) 5호

 

3. 반상관계의 변천과 해소

가. 고종31년(1894년)에 공사 노비제도를 없앴으므로 매매등 강권은 없어졌다. 하대 언사나 풍속의 일부는 오래도록 존속되어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나. 이러한 풍습은 8.15해방 전후까지 계속되다가 6.25사변을 겪으면서 소수의 하인들이 이주하면서 완전 해소되었다.

다. 요당리의 班常 관계는 6.25 동란 이후에도 아무 마찰이 없었고 1970년대까지 年老한 사람들은 來往하며 交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