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역사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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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7.png 2세 직제학공 류극서(柳克恕)의 역사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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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사(高麗史)

신우 계해 9년(1383년)

양광도 안렴사 류극서(柳克恕)와 교주도 안렴사 최자(崔資)에게 내구(內廐)의 말을 1필씩 주었다.


신우 을축 11년(1385년)

내시 김실이 본처를 버리고 다시 어떤 사족(士族)의 딸에게 장가 들려고 결혼날 휴가를 청하였더니 신우가 말하기를 "네 처 될 사람을 나에게 보인 연후에 장가 들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실이 숙비를 통하여서 휴가 허락을 받고 장가도 들었으나 신우가 마음 속으로 이것을 앙심을 품고 다른 일에 구실을 붙여서 김실을 순군에 가두고 죽이고자 하였다. 김실이 도주하였으므로 대수색을 하고 그 날 당직인 천호(千戶) 류극서(柳克恕)를 옥에 가두었다. 구정(毬庭)에서 열병식을 거행하고 신우가 순군으로 말을 달려 가서 류극서에게 욕하기를 “네가 만약 김실을 붙잡지 못하면 김실의 죄를 네가 대신으로 받을 것이다㰡라고 하였다.


신우 정묘 13년(1387년)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임수(任壽),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류극서(柳克恕), 전공 판서(典工判書) 김승귀(金承貴)로 하여금 제2, 제3, 제4차로 도합 말 3천 필을 압송하고 연이어 요동으로 가게 하였다.


신우 무진 14년(1388년)

연안 부사(延安府使) 류극서(柳克恕)와 내시 김실(金實)을 죽였다. 류극서는 임견미의 문객이며, 이존성(李存性)의 말을 듣고 가만히 김실을 탈옥케 한 사람이다.

 

2)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계해 신우9(1383)년

○ 2월에 양광도 안렴 류극서(柳克恕)와 교주도 안렴 최자(崔資)에게 나라 마구의 말을 각각 한 필씩 주었다.


을축 신우11(1385)년

봄 정월 ○환관 김실이 도망갔다. 과거에 실이 아내를 버리고 다시 사족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니, 우가 말하기를, "그 여자를 내게 보인 연후에야 장가들 수 있다."고 하였다. 실이 용덕을 통하여 그러지 말기를 청하니, 우가 허락하였다. 그래서 실이 그 여자를 우에게 보이지 않고 장가들었는데, 우가 감정을 품고 다른 일로 칭탁하여 실을 순군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므로, 실이 도망갔다. 우는 영을 내려 크게 수색하며 당직했던 천호 류극서(柳克恕)를 옥에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