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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嗚呼 宗法之不講也久矣宋時有眉山蘇明允者慨然行之乃曰觀吾譜者孝悌之心油然而 오호 종법지불강야구의송시유미산소명윤자개연행지내왈관오보자효제지심유연이 生矣旨哉言乎敦本之意孰加於此 생의지재언호돈본지의숙가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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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종파의 법규를 알리지 않은지 오래 되었구나. 송나라 때 모산 송명원이 탄식하면서 행하고 말하기를 “우리 족보를 보는 사람은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날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뜻을 말한다면 근본을 돈독케 하는 뜻이니 무엇이 이보다 더 하겠는가.
嘗推類而觀之樹木之於枝葉江海之於派流雖有千萬之殊而本之則同至於人也何獨不 상추류이관지수목지어지엽강해지어파류수유천만지수이본지즉동지어인야하독불 然始爲一人之身者非本源也耶逮自兄弟而分者非枝葉也 연시위일인지신자비본원야야체자형제이분자비지엽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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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유추해 본다면 수목의 가지와 잎 및 강과 바다의 파류(派流)가 비록 다름이 많다고 하나 그 근본은 같은 사람에게 이르니 어찌 홀로 아니라 하리요. 처음에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되었으니 근원이 아니겠는가. 형제로부터 나누어지는 가지와 잎이 아니겠는가.
耶繼姓者宗統也出嫁者外裔也代系之綿遠族儻之蔓延而遂至於自親而疎自近而遠漸 야계성자종통야출가자외예야대계지면원족당지만연이수지어자친이소자근이원참 疎漸遠宗緖無統吉凶與慶弔情禮不相及則幾何其不爲行路人也 소참원종서무통길흉여경조정예불상급즉기하기불위행로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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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이은 사람은 종통(宗統)이오 출가한 사람은 외예(外裔)이다. 대와 계촌이 멀어지고 종족이 뻗어나면 드디어 친한 데서부터 먼 데로 이르고 가까운 데서부터 멀어져서 점차 정분이 성기어지고 점차 멀어져 종족의 계통이 서지 않아 길흉과 더불어 경조사에 대한 정과 예가 서로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 그것이 길가는 사람과 같지 않으리요.
柳之受氏肇自文化高麗大丞公車達是爲鼻祖譜未得悉者失傳而不能繼也始祖掌令公 류지수씨조자문화고려대승공차달시위비조보미득실자실전이불능계야시조장령공 移貫於全州子孫仍家焉 이관어전주자손잉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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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 씨를 받음이 처음에는 문화의 고려 대승공 차달로부터이니 이분이 비조가 되시나 족보를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은 실전되어 능히 계대를 잇지 못했기 때문인데 시조 장령공께서 관(貫)을 전주로 옮겨 자손이 그로 인하여 가문을 이루었다.
其後子孫世有聞人仕宦多居於京師至全陽府院君而極榮盛流落而居於鄕者若安東豊 기후자손세유문인사환다거어경사지전양부원군이극영성유락이거어향자약안동풍 榮之族是己族序以之而疎遠居地又泛而隔閡 영지족시기족서이지이소원거지우범이격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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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자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어 벼슬을 하니 서울에 많이 사는데 전양부원군에 이르러 크게 번영하였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고있는 안동, 영풍의 일가가 있는데 족서(族序)가 소원하고 물위에 떠 닫히고 막혔다.
南阮北阮一盛一衰公藝之同居絶矣芳國之樂事難成盖由於族不講而譜不修吾宗之爲 남완북완일성일쇠공예지동거절의방국지악사난성개유어족불강이보부수오종지위 欠事如何哉 흠사여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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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남완과 북완의 한번 번성하고 한번 쇠퇴함이니 공공의 법도로서 같이 삶이 끊어진 것이다. 어진 선비가 즐거운 일을 이룩하기 어려운 것은 대개 종족을 강론하지 않고 족보를 편찬하지 않은데 있어 우리 종중의 부족한 점이 되니 어떠한가.
주) 남완북완(南阮北阮) : 중국 진나라 때 완함과 완적 두 사람은 도(道)의 남쪽 빈촌에 살고 다른 완씨 들은 도의 북쪽 부자촌에 살아 같은 조상이면서도 빈촌의 완함과 완적은 남완, 부자촌의 완씨들은 북완이라 한데서 유래하는 말로서 빈부(貧富)의 차이로 혈통을 무시하고 사는데 따라 사람들의 평가가 다른 것에 비유한 말.
歲在壬辰春宗公淰氏按嶺節欲遂其曾大夫春湖相國之志卽以書遍諭于諸宗人使之各 세재임진춘종공심씨안영절욕수기증대부춘호상국지지즉이서편유우제종인사지각 修家牒以來 수가첩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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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3년(1652년) 봄에 종친인 심(淰)씨가 영남의 절도(節度) 벼슬을 받고서 그 증대부인 상국(영의정) 춘호(류영경)공의 뜻을 펴고자 바로 편지로서 모든 일가에게 알려 각기 가첩을 만들어 오라고 하였다.
自始祖以下至於苗裔攷其代系叙其親疎同宗則庶踐而不遺外波則曾孫以爲限井井有 자시조이하지어묘예고기대계서기친소동종즉서천이불유외파즉증손이위한정정유 條理裒爲一券極其祥證入之榟而壽其傳以爲門中家乘善乎 조리부위일권극기상증입지재이수기전이위문중가승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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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부터 아래로 먼 자손에 이르기까지 그 대손의 가깝고 먼 순서를 정하고 일가는 서출이라도 버리지 않고 외파(外派)는 증손으로 한정하니 잇달아 조리 있게 모아 한 권이 되니 거기에 상세하게 고증을 하고 인쇄해 오래도록 그를 전하여 문중의 가승이 되게 하였으니 좋구나.
方伯相公之爲譜也其蘇氏之遺意乎明宗法於旣墜之後修代系不傳之餘使三百年未遑 방백상공지위보야기소씨지유의호명종법어기추지후수대계부전지여사삼백년미황 之擧幸而得成於今日親疎遠近臚列分疎俱載於一牒之上而擧知其所自出俾疎者而親 지거행이득성어금일친소원근려열분소구재어일첩지상이거지기소자출비소자이친 遠者而近尊祖之心敦宗之意藹然弸中而不自勝信乎 원자이근존조지심돈종지의애연붕중이불자승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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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관찰사)과 상공(영의정)이 족보를 하심이 소씨가 남긴 뜻에 이르니 종파의 법규를 밝힌 것이 이미 쇠퇴한 뒤인데도 전하지 않는 나머지도 대계를 편집하여 3백년이나 하지 못한 일을 일으켜 오늘에야 이룩하게 되니 친소(親疎)와 원근(遠近)을 열로 벌려놓아 분별하여 모두 한 책 위에 실으니 손에 쥐면 그 스스로 나온 바를 알아 성긴 이는 친하게 되고 먼 이는 가까워져 존경하는 조상의 마음과 두터운 일가의 뜻이 온화하게 가득 차니 스스로 믿음을 이기지 못하겠구나.
孝悌之心油然而生者不誣也如是夫㮨與方伯同祖於參判公今爲六從之親而親而竭矣 효제지심유연이생자부무야여시부직여방백동조어참판공금위육종지친이친이갈의 幸以修系而投門下殆累日相接公遇之若一家之倫惓惓乎繼志述事款款乎敦宗睦族丁 행이수계이투문하태누일상접공우지약일가지윤권권호계지술사관관호돈종목족정 寧委曲可爲薄俗之勸 녕위곡가위박속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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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 공경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난다는 게 거짓이 아니 도다. 무릇 이와 같이 직(필자)은 방백과 더불어 참판공과는 선대 할아버님이니 같은 14촌 형제인 일가인데 있는 힘을 다하였다. 다행이 계보를 편찬하기 위하여 문하에 들어와 자못 여러 날 서로 접하니 공을 만난 것이 일가의 떳떳한 도리이며, 삼가 정성으로 뜻을 이어 충실하게 일을 한 것은 두텁고 화목한 친족으로서 정중하게 일의 성취를 바라고 가히 경박한 풍속을 따르지 않기 위함이다.
噫世德家聲方伯相公有焉古人有言曰宗法修而風俗厚又曰治譜與治國同凡我同宗克 희세덕가성방백상공유언고인유언왈종법수이풍속후우왈치보여치국동범아동종극 念修譜之意益篤仁親之心入孝出悌各盡其職貽謨垂範推極其効則所謂不出家而敎成 념수보지의익독인친지심입효출제각진기직이모수범추극기효즉소위불출가이교성 於國者其不在此歟 어국자기부재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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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대로 내려오는 덕과 집안의 명성은 방백과 상공이 있기 때문이다. 옛 사람의 말이 있으니 이르기를 종파의 법규를 닦으면 풍속이 천박하지 않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족보를 바로 잡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우리 일가는 더욱 족보 정비의 뜻을 생각하고 더욱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을 돈독히 하여 들(入)면 효도하고 나(出)면 공경하여 각기 그 직분을 다하고 조상이 끼친 꾀의 모범을 보여 숭배하고 높이 받든다면 이른바 집을 나가지 않아도 나라에 도덕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嗚呼世代遷移機會易失繼此而往更有佳子孫出而爲世用能軆方伯今日之意遵而勿替 오호세대천이기회이실계차이왕경유가자손출이위세용능체방백금일지의준이물체 傳之不朽則吾宗仁厚之風將期以千百世之久而綿綿不絶無媿於蘇氏之譜矣 전지불후즉오종인후지풍장기이천백세지구이면면부절무괴어소씨지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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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대는 바뀌어 기회를 잃기 쉬우니 이를 이어가면 다시 훌륭한 자손이 나와 세상에 쓰임이 되어 능히 방백의 금일의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거나 버리지 않고 전한다면 우리 일가의 어질고 후덕한 가풍이 장차 천백세 오래도록 기약하고 줄줄이 끊이지 않아 소씨의 족보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壬辰五月十一代孫㮨再拜敬跋 임진오월십일대손직재배경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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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3년(1652년) 5월 일에 11대손 직(㮨)은 두 번 절을 하고 공경히 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