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 족보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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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

1. 임진보

2. 구병오보

3. 재병오보

4. 병자보

5. 갑자보

6. 병진보

7. 임진보발

 

 

회헌공파보

8. 회헌공파보 신축보

 

본문

p07.png 8. 檜軒公派譜序 회헌공파보서 (1961년)

 

 

夫族譜者는 同姓之謂族이요 敍倫之謂譜니 上承祖祖之昭穆하고 下繼孫孫之宗支

부족보자는 동성지위족이요 서륜지위보니 상승조조지소목하고 하계손손지종지

하야 編載於諸冊者也라. 無是면 何以知祖祖昭穆이며 何以知孫孫之宗支乎아 來歷

하야 편재어제책자야라. 무시면 하이지조조소목이며 하이지손손지종지호아 내력

不知면 則禽獸無異리니 可不愼哉아

부지면 즉금수무이리니 가부신재아

 

 

대체로 족보라는 것은 성씨(姓氏)가 같은 집안의 동족을 차례로 적은 것으로서 윗대(代)를 이은 선조의 신주를 사당에 모신 차례와 아래 대(代)를 이어가는 자손의 종파(宗派)와 지파(支派)를 엮어 기록한 모든 책을 말한다. 이것이 없으면 조상을 사당에 모신 차례를 어찌 알고 종파와 지파의 자손을 어찌 알 것인가. 내력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으니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옳지 않을 가.

 

 

 

自古以來로 未有孝而忘其先하고 未有仁而遺其親故로 自王公至庶民히 莫不有譜

자고이래로 미유효이망기선하고 미유인이유기친고로 자왕공지서민히 막불유보

法은 雖百世之後라도 未常忘追慕之誠하고 視敦睦之誼니 可不重哉아

법은 수백세지후라도 미상망추모지성하고 시돈목지의니 가부중재아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효도를 하지 않아 선조를 소홀히 하고 어질지 못하면 일가(一家)를 잊게되는고로 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보법(譜法:족보의 법식)이 있으면 비록 100대(代) 후라도 항상 추모하는 정성을 잊지 않고 화목한 정분을 본받을 것이니 중하게 여기는 것이 옳지 않을 가.

 

 

 

惟吾全州之柳는 始掌令公하야 興於完山伯以後로 設譜孝墓壬辰에 初於一冊하고

유오전주지류는 시장령공하야 흥어완산백이후로 설보효묘임진에 초어일책하고

英祖丙午에 再於四冊하고 正廟丙午에 三於十冊하고 高宗丙子에 四於十七冊하고

영조병오에 재어사책하고 정묘병오에 삼어십책하고 고종병자에 사어십칠책하고

甲子에 五於十冊中俱載吾先祖  

갑자에 오어십책중구재오선조

 

 

생각하건대 우리 전주류씨는 장령공을 시작으로 완산백 이후에 일어나 효종3(1652)년에 최초로 임진보 1권을 간행하고 영조2(1726)년에 두 번째로 병오보 4권을, 정조10(1786)년에 세 번째로 병오보 10권을 간행하였으며, 고종13(1876)년 네 번째로 병자보 17권을 간행하고 1924년에 5번째로 갑자보 10(23)권에 우리 선조를 등재하였다.

 

 

 

鴻公 巨卿名儒碩德이 世世不絶하야 以識後人은 道溪公之休廕厚澤이 愈久愈新宗

홍공 거경명유석덕이 세세부절하야 이식후인은 도계공지휴음후택이 유구유신종

支繁衍하야 其麗不億이언마는 當此之時하야 國土南北分裂하니 何望合譜哉리요

지번연하야 기려불억이언마는 당차지시하야 국토남북분열하니 하망합보재리요

 

 

홍공(鴻公), 많은 상대부(上大夫), 이름난 유학자와 덕이 높은 사람이 대대로 끊이지 않아 유식한 후손 도계공(류심)의 훌륭하고 두터운 은덕이 오래 오래 새롭게 더해가고 종파와 지파가 번성하여 불어나니 그 숫자가 억(億)은 안 되지만 현 시대를 맞이하여 남북이 분열되었으니 어찌 합보(合譜)를 바랄 수 있겠는가.

 

 

 

諸宗이 相議後 檜軒公派譜를 修成하니 規例는 一尊舊譜하고 尊祖敬宗之義와 進

제종이 상의후 회헌공파보를 수성하니 규례는 일존구보하고 존조경종지의와 진

先勉後之戒는 幷在先譜丨니 不敢贊一言하고 各派中에 基冕 基百 麟鎬 昌熙가

선면후지계는 병재선보곤니 불감찬일언하고 각파중에 기면 기백 인호 창희가

以此勤勞修譜하야 乃成編集하니 諸宗勉之어다.

이차근로수보하야 내성편집하니 제종면지어다.

 

 

여러 종친들이 상의를 한 후 회헌공파 족보를 편찬하는데 규례(規例)는 옛 족보를 존중하고 조상을 존경하고 종친을 공경하는 도리(道理)와 진선면후(進先勉後)의 계(戒)는 먼저의 족보와 합치는 것이니 너무 훌륭하여 감히 칭찬을 한 마디도 못하고 각파 중에서 기면, 기백, 인호 및 창희씨가 족보를 부지런히 가다듬어 편집을 마치니 모든 종친의 부지런함이 도다.

 

 

 

檀紀四二九四年辛丑流火月中浣日 完山伯十七代孫 信 謹敍

단기사이구사년신축류화월중완일 완산백십칠대손 신 근서

 

 

서기 1961년 (음) 7월 중순(中旬) 완산백(시조 류습)의 18세손 류신이 삼가 서문을 짓다.